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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강 머리 앤 Anne of Green Gables

 

루시 모드 몽고메리 글, 조디 리 그림, 김경기 옮김

시공주니어

 

빨강 머리 앤 전시회를 보고 오니 책으로 읽고 싶어 졌다.

전시회에서는 작가들이 각자가 읽은 빨강 머리 앤을 작품으로 전시회 놓았었는데, 매슈 아저씨의 따듯한 마음, 다이애나와의 우정, 앤이 사랑했던 에이번리 자연까지, 동일한 책을 이렇게 다양한 관점에서 볼 수 있어서 인상적이였다. 전시회 덕분에 나도 이번에 책을 읽는 동안 다양한 인물들을 좀 더 세심하게 관찰하고 각자의 생각과 마음을 생생하게 느껴볼 수 있었다.

 

다양한 인물들 중에서도 마릴라 아주머니, 매슈 아저씨의 마음에 동화되어 읽었는데 이젠 내가 부모가 되어서 그런가보다.

매슈 아저씨에게 앤은 누군가를 사랑하고 아끼는 마음을 알게 해주고 그 사랑을 표현하고 실행하는 용기를 찾아준 존재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사랑은 사랑할 대상이 오기 전까지는 내 마음속에서 꺼내기 어려울 수 있는 감정이기도 하다. 매슈가 앤에게 퍼프 소매 옷을 사주기 위해서 상점에 가서 엉뚱한 물건을 몇번 사오는 과정을 보면서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서 작은 용기를 내는 모습에 뭉클했다. 매슈가 죽기 전에, 자신의 죽음을 알았던 것인지, 앤에게 '남자 아이 열명 보다 앤 한명이 훨씬 좋다', '앤 네가 자랑스럽다'라는 말을 하는 장면에서는 사랑하는 앤에게 자신의 진심을 표현하는 매슈 아저씨의 변화에 나도 모르게 눈물이 흐르기도 했다. 아마도 이것은 앤 자체가 사랑스럽다는 것보다는 앤이 늘 자신을 지지해주는 매슈 아저씨를 위해 노력하고 믿음에 보답하는 앤의 사랑을 매슈 아저씨도 느꼈기 때문에 매슈 아저씨의 마음도 사랑으로 변한게 아닐까 한다. 진실한 사랑은 늘 양방향으로 움직이니까.

 

어릴적 TV에서 봤던 마릴라 아주머니의 표정, 검은 옷, 목소리에 고정 관념이 생긴 탓이였을까. 이번에 책을 다시 읽으면서 가장 놀라기도 하고 감동적이였던 부분은 대부분 마릴라 아주머니의 말과 생각들이였다. 마릴라 아주머니는 결코 앤이 착하고 성숙한 사람으로 변한 결과로서의 앤을 사랑했던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앤의 존재를 기쁨으로 생각하고 사랑했다는 것이다. 사람을 사랑하는 마음은 그가 어떤 기대에 보답하고 좋은 존재가 된 결과로써의 마음이 아니라, 그의 존재 자체로 사랑이 시작되고 서로의 사랑하는 마음을 느껴서 서로 변화를 해가고 그런 과정에서 사랑이 깊어진다는 것을 나는 마릴라 아주머니를 통해서 다시 한번 느낄 수 있었다. 

종교적인 신념, 아이를 키운적이 없는 어른으로서 옳다고 믿는 규칙들 그리고 실제 앤의 모습 사이에서 자신만의 기준을 찾기도 하고 때로는 흔들리기도 하고 융통성을 발휘하기도 하는 모습에서는 앤을 사랑하지만 올바르게 키워야 한다는 마릴라의 사랑과 의지를 찾을 수 있었다. 뭔가 이 책에서 보석을 찾은 느낌이랄까.

 

책의 후반부에 눈이 아파서 장님이 될 수도 있는 마릴라와 함께 초록 지붕에 남기로 한 앤의 결심을 들은 마닐라는 그 동안 앤에게 하고 싶었던 말을 용기내서 꺼내는 장면이 있다. 사랑을 받는 마음 보다 더 큰 변화를 가져오는 것이 '사랑하는 마음, 사랑을 주는 마음'이라고 믿는 나는 마릴라가 앤을 진심으로 사랑했기에 마릴라 스스로 변화를 했다는 이 믿음의 순간을 책에서 다시 한번 확인할 수 있었다.

 

길버트와 화해를 하고 앞으로 우정을 쌓아가기로 한  2장 분량의 짧은 결론은 참 마음에 든다.

길지 않아서 좋았고 열린 미래를 상상하게 해줘서 멋졌다.